2020년 경자년은 흰쥐의 해다. 게티이미지뱅크
석가모니 언행록인 불교 아함경(阿含經)에 쥐가 등장하는 설화가 있다. 길을 가던 사람이 미친 코끼리에 쫓겨 덩굴을 타고 우물 속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우물 바닥에 자리잡은 건 몸을 도사린 독사다. 끝내 덩굴은 끊어지고 말 것이다. 흰쥐와 검은쥐가 갉아먹는 중이다. 코끼리는 업고(業苦ㆍ악업 때문에 받는 괴로움), 덩굴은 삶이다. 위태로운 인간 삶의 종말을 기다리는 독사는 바로 지옥이다. 흰쥐와 검은쥐는 각각 낮ㆍ밤을 상징한다. 시간이 삶을 야금야금 파괴하는 형국이다.
쥐는 평생 앞니가 자란다고 한다. 생존하려면 항상 뭔가를 갉아야 한다. 근면이 숙명인 셈이다. 그러나 인간과는 악연이다. 천적으로부터 은신하기 위해서는 기생(寄生)이 필연이었을 수 있다. 시간뿐 아니다. 곡식을 축내거나 질병을 옮기며 부지런히 숙주인 인간에게 피해를 입혀 온 쥐다. 물론 인간은 줄곧 쥐의 박멸을 기도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무위다. 그 정도로 쥐의 생명력은 특별하다. 도리어 인간이 쥐를 경외의 대상으로마저 삼고 있는 이유일 테다.
2020년은 경자년(庚子年)이다. ‘힘센 흰 쥐’의 해다. 십간(十干)의 하나인 경(庚)은 금(金)ㆍ수(水)ㆍ목(木)ㆍ화(火)ㆍ토(土) 등 오행(五行) 가운데 가장 강한 금, 즉 쇠(철)에 해당하고 음양으로는 양(陽)이다. 음(陰)의 금인 신(辛)보다 양의 금인 경이 힘이 더 세다고 한다. 금의 색은 흰색이다. 자(子)는 방위(方位)와 시간의 신인 쥐인데 십이지(十二支)의 첫자리인 쥐 중에서도 우두머리가 흰쥐다. 1428년 조선 세종이 상서로운 동물로 언급했다는 기록도 있다. 올해가 예사로운 해는 아닐 듯하다.
곱돌로 만든 쥐 모양의 석상. 얼굴은 동물이고 몸은 사람인 반인반수 모습이다. 통일신라 시대에 십이지 문화가 있었음을 확인해주는 유물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태초에 쥐가 있었다
‘창세가(創世歌)’는 함경남도 지역에서 전승되던 서사무가(敍事巫歌)의 일종이다. 1923년 당시 여무(女巫)인 금쌍돌이가 구연한 내용을 손진태가 채록했다. 쥐는 이 노래에서 조물주인 미륵보다 지혜가 더 뛰어난 존재다. 물과 불의 근원을 미륵에게 알려준다. 이는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이 쥐를 현자(賢者) 같은 영물( 物)로 믿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증거라는 게 민속학자인 김종대 중앙대 교수의 설명이다.
고대 역사서들을 보면 전통적으로 쥐는 예지력을 지닌 동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삼국사기’ 신라 혜공왕 5년(769년) 11월 기록이다. 치악현(현재 원주)에서 쥐 8,000마리가 평양 방향으로 이동했는데, 눈이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눈이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듬해 농사가 흉년일 가능성의 암시다. 불길한 현상을 점치는 동물로 쥐가 묘사된 것이다.
심지어 인간 언어를 구사한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사금갑(射琴匣)’ 이야기다. 신라 비처왕(소지왕)이 만난 쥐가 사람처럼 “까마귀가 가는 곳으로 따라가소서”라고 말했다. 까마귀를 쫓다가 노인과 조우했는데, 노인이 봉투에 “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고 쓰인 편지를 왕에게 바쳤다. ‘한 사람이 바로 왕’이라는 일관(日官)의 조언을 듣고 내용을 확인했더니 사금갑, 즉 ‘가야금 상자를 쏘라’는 지시였다. 상자 안에 간통 중인 승려와 공주가 왕을 해치려고 숨어 있었던 것이다.
전통적으로 쥐는 부(富)와도 연결된다. “재산을 모으는 소질이 있기 때문에 노력하면 상당히 큰 재산을 모으기도 한다”는 쥐띠의 사주는 먹이를 찾기 위해 늘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쥐의 생태적 특성을 반영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쥐가 도망가면 집안이 망한다’는 미신은 쥐가 축재의 보증이라는 방증이다. 다만 쥐가 재물을 부르는 방식이 횡재는 아니다. 쥐에게 부는 꾸준한 준비의 결실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인다는 점에서 쥐의 근면성은 예지력과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쥐 신장(神將)으로 만봉 이치호의 1977년 작이다. 십이지신도는 절에서 큰 행사를 할 때 잡귀를 막기 위해 해당 방위에 걸어둔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각종 설화에서 쥐는 인간을 돕는 조력자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쥐가 나무꾼이 시련을 극복하는 데 힘을 보탠다는 내용이 포함된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쥐의 조력은 시혜에 대한 보은(報恩) 차원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무래도 서민들의 정서가 호의적이기만 할 수는 없다. 쥐가 가축이 아닌 ‘불청객’인 데다 당장 도움보다 피해를 더 많이 주기 때문이다. 잠자는 남편의 코에서 나온 ‘혼쥐’를 죽여 남편에게서 도둑 습성을 제거한 아내의 이야기라든지 ‘옹고집전’처럼 발톱과 손톱을 먹고 사람으로 둔갑하는 쥐의 이야기 등에는 이런 부정적 이미지가 투영돼 있다. 간신이나 탐관오리를 쥐에 빗대는 문학 작품도 적지 않은데, 남의 곡식을 허락 없이 축내거나 책이나 가구를 쏠아 망가뜨려 버리는 쥐의 부정함이 연상의 원천이다.
속담에서도 쥐는 보잘것없지만 소란스러운 존재로 등장하기 일쑤다. ‘쥐꼬리만 하다
’,
‘쥐뿔도 모른다
’,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
‘쥐구멍에 홍살문 세우겠다
’,
‘독 안에 든 쥐
’,
‘산이 들썩한 끝에 쥐새끼 한 마리’ 등 쥐에 부정적인 속담이 수두룩하다. 빙허각 이씨가 1809년에 쓴 ‘규합총서’는 여성들의 가사 방법들을 모아놓은 책인데, 쥐를 없애는 법도 포함돼 있다.
다만 실용성은 떨어진다. 검은 개의 피를 게에 부어 사흘을 사르면 쥐가 모인다거나 수컷 쥐의 음경을 베어버리면 그 쥐가 집안 모든 쥐를 잡아 죽인다거나 정월 첫 진일(辰日)에 쥐구멍을 막으면 다시 뚫지 않는다는 식이다. 주술에 의존하고 싶을 정도로 쥐가 싫었다는 뜻이다.
쥐 축출 역사의 압권은 20세기 중ㆍ후반 새마을 운동이다. 당시 정부가 포스터와 홍보 책자 등을 배포하며 국가적인 쥐 잡기 운동을 독려했다. 쥐약ㆍ쥐덫으로 각 가정이 경쟁하듯 쥐를 잡았고 학생들은 잡은 쥐의 꼬리를 들고 등교하기도 했다.
20세기 초에 그려진 ‘민들레 잎을 먹고 있는 쥐’ 그림. 쥐는 생존을 위해 자기 체중의 20% 넘는 양을 늘 먹어야 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끝까지 살아남을 쥐
전통 문화 상징 체계로 나타나는 쥐에 대한 애증의 배경에 쥐의 생물학적 특징이 자리한다는 건 물론이다. 쥐는 생존의 아이콘이다. 별다른 무기가 없어 보이지만 재난을 미리 감지하는 능력뿐 아니라 작은 몸집과 빠른 번식, 강한 적응력 등이 쥐를 만만치 않은 존재로 만든다. 약 100억마리에 이르는 규모는 지금껏 알려진 포유류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유독 물질과 방사선, 220볼트에 달하는 전기 충격을 견디고, 섭씨 영하 40도부터 영상 60도까지의 온도 범위에서 서식 가능하며, 썩거나 짠 물로도 갈증을 해소할 수 있고, 다양한 전염병에 대항할 수 있는 면역체계를 갖추고 있는 데다, 철을 갉아 부서뜨리는가 하면, 쉬지 않고 1㎞를 헤엄치거나 물속에서 사흘씩 버텨내는 포유류는 사실상 쥐가 유일하다고 한다. 과학 칼럼니스트인 김재호씨는 “어쩌면 쥐는 생존에 가장 적합한 포유류의 완성체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종(種)을 유지하는 쥐의 비결은 다양하고 탁월하다. 일단 다산(多産)이다. 한 번에 평균 최대 9마리까지 새끼를 낳는데 그게 1년에 6~7회나 가능하다. 다른 생태적 압력이 가해지지 않을 경우, 1년 뒤 쥐 한 쌍이 2,400마리까지 불어날 수 있다고 한다. 적응력도 상상 이상이다. 서식 환경에 맞춰 기민하게 진화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핵심 추동력은 호기심이다. 실험을 해봤더니 미궁을 탐색하려고 먹기를 포기할 정도였다. 게다가 영민하다. 기억력이 비상하고 동료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능력도 있다.
사실 포유류의 처음도 쥐였다. 약 2억2,500만년 전에 살았던 최초의 포유류 아데로바시레우스는 쥐의 형상이었다. 거대한 공룡들로부터 도망쳐 살아남으려면 작고 민첩해야 했을 것이다. 여전히 쥐는 포유류 중에서도 피식자(被食者) 처지다. 도처에 고양이 같은 포식자들이다. 기생의 역사는 피신ㆍ은신에서 비롯됐다. 야생 포식자들이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쥐는 알았다. 인간 거주지에는 안전하게 숨을 장소뿐 아니라 음식물도 넘쳐났다.
십이지가 소재인 만화영화 ‘요괴메카드’에 등장하는 캐릭터 장난감들. 쥐를 형상화한 ‘놀쥐’는 천재형 캐릭터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공존은 쉽지 않았다. 중세 인도에서 거대 쥐가 유럽으로 들어왔는데, 이때 급성 전염병인 흑사병(페스트)도 함께 유입됐다. 쥐의 몸에 기생하는 벼룩이 옮기는 페스트는 1347~1350년 4년간 2,500만명을 죽였다.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규모였다. 현재 포유류 실험 동물 중 쥐가 많은 건 쥐가 옮긴 페스트 탓에 인류가 절멸될 위기에 직면해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친 인간 중심 세계관에 재고 여지가 없지는 않다. 최근 농림수산식품부는 미성년자 동물 해부 실습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 시행(3월 21일)을 앞두고 시행령 개정을 통해 과태료 부과 기준을 마련했다. 비윤리적 동물 실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쥐의 해를 맞아 3월 1일까지 특별전 ‘쥐구멍에 볕 든 날’을 연다. 쥐 관련 상징과 쥐의 생태를 제대로 알고 쥐와 친근해질 기회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
@
hankookilbo.com